[한의학 칼럼] "과도한 고혈압 공포...비양심 제약사와 의학자 합작품"

의료/건강 / 김선국 박사 / 2019-03-11 09: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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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1) - 내과
▲김선국 한의학 박사.
[일요주간 = 김선국 박사] 2013년 한국의 인구는 대략 4800만 명이다. 그런데, 고혈압으로 치료를 받은 사람이 587만 명이 투약을 했고, 그중에 341만 명 정도는 년 180일 이상을 고혈압 약을 복용하였다.

한국인의 질병 분포를 보면, 치주질환, 감염성 질환, 관절염, 고혈압 순이다. 그 뒤에 정신 질환, 당뇨병이 있다. 고혈압이 전체 질병의 4위이지만, 사실 단일 질환으로는 최고라고 볼 수 있다. 당뇨병이 48만 건에 비해서 열배에 이르고, 한국인이 세계에서 최고로 고혈압을 앓고 있는 듯하다.

이런 사태를 어찌 보아야 하는지, 한의사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하다. 이 문제는 단순한 서양의학의 문제라기보다는 제약 자본과도 자본주의의 탐욕과 속성을 드러내는 난제이다.

20세기 초에 고혈압은 160/100까지는 운동과 생활환경 개선을 통해서 치료가 가능하고, 투약하지 않고도 관리하는 것이 낫다고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주장하였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고혈압 수치는 당연히 올라가는 것이라 하여 수축기 혈압이 (90 + 나이)까지는 괜찮다 하여, 60세의 경우에 150까지는 고혈압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강화되어 지금은 나이에 관계없이 130/90만 되어도 고혈압이 의심된다 하고, 이 수치에서 조금만 높아져도 고혈압 약을 먹으라는 것이 의사들의 지침이다. 그런 지침이 생긴 것은 자본 제약의 엄청난 로비와 양심을 버린 일부 의학자들의 합작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고혈압의 원인은 아직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본태성 고혈압(Essential Hypertension)이라 한다. 이는 현대 의학적으로 원인을 찾기가 힘들다는 편리한 용어이다.

사실 원인은 단순하다 혈관이 좁아지거나 상처가 나서 혈액을 잘 공급하기 위해서, 인체의 심장이 더 힘을 강하게 하여 혈액을 펌핑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에서 가장 먼저 나온 혈압약은 이뇨제였다.

혈관이 액체를 줄이면 당연히 혈액의 압력이 떨어지기에 혈압이 낮춰진다. 그런데 이런 이뇨제 형태의 혈압약은 값이 쌌기에, 좀 더 고급스럽고 비싼 심장의 박동수를 낮추는 베타 차단제 형태로 발전되었고, 칼슘차단제로 진화하면서 제약회사에 막대한 이득을 제공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 고혈압에 대한 협박에 가까운 연구 결과들과 강화된 고혈압 수치들이 그들을 합리화 시켰다.

필자의 주변에 두 분의 어르신이 있는데, 두 분 다 귀의 청력이 거의 소실되었다. 고혈압 약을 오랫동안 복용하면서 귀속의 림프액이나 혈액의 흐름을 강제로 낮춰버린 결과라고 생각이 든다. 혈압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 인체가 혈액의 공급을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수술환자들의 경우에 당연히 혈압을 올라간다.

수술 부위의 빠른 치유를 위해서 혈액의 공급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인체에서 자율적으로 심장의 박동수를 높이고, 혈압을 높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질병에서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혈압을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런 경우조차도 의사들은 혈압약을 처방한다. 혈압 수치라는 절대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의사들의 선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혈압은 우리 인체의 항상성의 상태를 나타낸다. 과도한 부하가 걸렸을 때는 그 부하의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지, 혈압약으로 눈속임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혈압약을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의학에서는 그 원인에 따라서 변증(辨證)을 한다. 간장에 과도한 부하가 걸렸는가, 아니면 심장이나 신장이 약한가, 아니면 기운이 딸려서 그러는가. 이런 것들을 구분하여 치료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의학은 지금 과도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드러나는 것만을 치료하는 서양의학의 치료는 한계에 도달했고, 이제는 좀 더 포괄적이고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인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의학이 필요하다. 또한 의료 소비자들도 질병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다. 인체는 완벽한 유기체이고, 스스로를 방어한다. 질병은 의사가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생활 가운데서 스스로의 몸을 돌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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