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⑤] 복을 짓고 지혜를 얻는 천년가람...청도 대비사

말사탐방 / 이재윤 / 2019-03-07 13: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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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이재윤기자] 마을이 끝나고 논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을걷이를 끝낸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초겨울 풍경이 펼쳐진다. 산 아래 골짜기로 접어드는 길옆으로 가로로 길게 골짜기를 막고 선 대비저수지 둑이 나타나고, 둑을 넘어서면 시린 하늘과 주변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비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굽이굽이 저수지 주변을 돌아 그림 같은 풍경을 뒤로 하고 대비사로 접어드는 길목, 네 기의 석조사천왕상이 각각 두 기씩 길 양쪽으로 시위하듯 서 있다.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에서부터 청년, 장년, 노년의 표정을 각각 담고 있다는 석조사천왕상을 지나 개울 위 조그만 다리 건너 높이 솟은 누각 용소루가 맞이한다.
 

▲대비사(출처=김해 정암사 카페)

천년가람의 역사 복원


대비사 창건 유래는 통일신라시대 ‘오갑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갑사는 가운데 ‘대작갑사’(현재의 운문사)를 중심으로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 동쪽에 ‘가슬갑사’, 그리고 서쪽에 ‘소작갑사’를 일컫는다. 이 중 소작갑사가 현재의 대비사로 이어지고 있다. 


오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560~567년 사이로, 진흥왕 재위 기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대암 옆 금수동에 초암을 짓고 수행하던 신승이 어느날 산과 골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이 놀라 우는 소리를 듣고 이곳에 오령(五靈)이 숨어 사는 곳임을 알게 되었고, 이에 절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비사에는 현재 절 입구에 세워진 누각 용소루와 보물 제834호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향로전과 요사채, 대웅전 우측 뒤편에 삼성각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대웅전 뒤 언덕에는 용두관음보살상을 새긴 바위가 있고, 절 동쪽 산기슭에 소요(逍遼) 태능(太能: 1562∼1649)과 취운(翠雲) 학린(學璘: 1575∼1651)의 부도를 비롯한 16기의 부도와 6기의 비가 모여 있다.

“시골 사찰의 주지스님들이 묵묵히 기도만 하시다 보니까, 역사와 유물의 가치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물의 가치를 알아야 그 사찰의 역사를 알 수 있고, 그러면서 신도들에게 사찰이 얼마나 유서 깊은 곳인지 자긍심을 심어줄 수도 있죠. 그래서 2012년 3월에 이곳에 부임해 오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대비사의 역사를 고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20여년 간 선방에 다니면서 공양을 얻어먹었는데, 이제 내가 이 도량을 복원하고 정비해서 가람에 맞는 형태를 갖추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복을 회향하자, 그런 원력을 세웠죠.”

대비사 주지 지연스님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종합정비계획을 받아 대비사 사역 전체를 조사하고 지표조사, 가람형태 조사 등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불사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올해 4월에는 큰 경사도 있었다. 


지난 1988년 도난 당했던 ‘대비사 영산회상도’를 환수하게 된 것이다. 대비사 영산회상도는 숙종 12년(1686년)에 조성된 불화다. 가로와 세로 길이가 3m가 넘는 대형 불화로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화기를 통해 해웅스님, 의균스님, 호선스님 등 당대의 대표적 화승들이 합작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대비사 내부 모습.(출처=김해 정암사 카페)

문화재청은 지난 10월 27일 대비사 영산회상도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예고된 상태로, 30일 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조선시대 손기수 선생의 ‘운포세고’란 문집에 대비사에 대해 쓴 칠언절구의 시가 있습니다. 내용 중에 보면 ‘고사한종우야루(古寺寒鍾又夜淚)’, ‘삼층석탑완여금(三層石塔宛如今)’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옛 절 차가운 종은 또 한밤에 눈물 흘리네’, ‘삼층석탑은 완연히 지금 같은데’의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를 통해서 대비사에 원래 종과 종루, 그리고 삼층석탑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리고 사역 내에 있는 부도 16기와 비 6기를 통해서도 고승대덕들이 우리 절을 수행처로 삼아 거쳐 간 유서 깊은 사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복을 짓고 지혜를 얻는 곳


지연스님은 2012년 대비사 주지로 부임해오면서 사역을 복원하고 정비하기 위해 청도군청과 함께 ‘청도 대비사 대웅전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해,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지표조사와 1, 2차의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계단지와 통일신라시대 유구 및 당시의 연화, 보상화문수막새와 화엽, 당초문암막새 등 많은 기와류를 발굴했다. 


이때 발굴한 기와류는 통일신라시대 왕경 조성에 사용된 기와와 같은 종류로, 대비사가 그 시대에 창건되었음을 밝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연스님은 앞으로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가마터 등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오갑사 창건 유래를 밝히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비사의 사역을 복원하는 작업과 함께 내년에는 선방을 중수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종정예하 친필로 ‘대비선원’ 현판도 받았습니다. 시골에 있는 말사들의 경우 주지스님 혼자 계신 곳이 많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이 사찰의 의미가 뭐냐는 생각을 해봤어요. 스님뿐만 아니라 신도들, 외부 불자님들, 그리고 비불자님들이 이 공간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이란 곳은 스님들이 머물면서 수양하고 생활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신도들도 이 모습을 보고 같이 복을 짓고 지혜를 얻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께 머물며 수양하고 생활하는 스님들이 사찰을 외호하는 대중입니다.”

지연스님은 선원을 중수하는 이유에 대해 스님과 신도, 불자와 비불자가 함께 머물고 공유하는 사찰의 의미로 강조했다. 선원을 운영하면 공부하는 스님들 외호하느라 힘들지 않겠냐는 물음에, “마당을 쓸어도 같이 하면 힘이 덜 들고, 음식을 먹어도 같이 하면 더 맛있는 거 아니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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