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③] 중생을 구제하는 출가수행자들의 門...남지장사

말사탐방 / 이재윤 / 2019-02-12 14: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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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이재윤기자] 대구시내에서 신천대로를 타고 가창으로 가는 길은 높은 하늘 아래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했다. 열린 차창으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드나들고 넉넉히 익어가는 대지의 풍요로움에 고즈넉한 시골길에 늦은 오후의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구불구불 산길로 접어들자 가을은 적막 속에 더 깊이 잦아들고, 우거진 숲 너머로 파란 하늘이 점점이 스며들고 있었다.

◆ 출가수행자들의 門


굽이굽이 산길을 오른지 얼마나 지났을까? 길 왼편으로 백련암 가는 표지판이 나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런한 석축과 돌계단 아래 널찍한 공터가 나타난다.
돌계단 위로 남지장사 도량으로 들어가는 문, 광명루가 파란 하늘 아래 오랜 세월에 빛이 바랜 모습으로 높이 서 있었다. 광명루만큼이나 세월에 색이 바랜 범종이 함께 맞이하는 남지장사 도량에 발을 들이니 마당 한가운데 오층석탑 뒤로 대웅전이 울창한 솔숲과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당당히 서 있다.

 

▲남지장사(南地藏寺)는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 최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사진은 남지장사에 현존하는 건물로 광명루의 모습이다.(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남지장사의 일주문 격인 광명루는 한쪽에는 범종각을, 다른 한쪽에는 작은 방을 조성한 형태도 특별하지만, 특이한 점이 또 있다. 대개 현판이 절 바깥에서 들어올 때 보이도록 걸린 것에 반해 광명루는 현판이 절 마당에서 보이도록 안쪽에 걸려있다.

“광명루를 보시면 바깥쪽에 현판을 걸었던 자리가 있어요. 원래 그 자리에 ‘최정산남지장사사문(最頂山南地藏寺沙門)’이라고 쓴 현판이 있었는데, 일주문에 이렇게 ‘사문’이라 쓴 경우가 거의 없는데 특별한 경우죠. ‘사문’은 보통 출가수행자를 일컫는 말인데, 그래서 ‘사문’이라고 한 것은 출가수행자들이 드나드는 문이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현판은 1800년대에 제작된 것인데,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 훼손이나 도난을 방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지금은 동화사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대신 탁본을 떠서 똑같이 현판을 만들어 올해 동지 쯤 광명루에 걸려고 준비 중입니다.”

◆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이 스미다!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최정산에 있는 남지장사는 신라 신문왕 4년(684년)에 양개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911년에 발간된 ‘조선사찰사료’에는 ‘양개화상은 육조 혜능의 법손으로 신라 신문왕 4년에 동쪽으로 와서 절을 짓고 가르침을 전했다는 설화가 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건 당시에는 왕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유지들도 시주를 많이 해, 8개 암자에 수도하는 승려만도 3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사세가 매우 컸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와 궁예 간의 전쟁에서 절은 폐사하고 1263년 고려 원종 4년에 일연선사가 중창했다. 또한 조선을 개국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고승 무학대사도 이곳에서 수도했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이곳에서 3000여 명의 승병 훈련을 진두지휘했던 호국사찰로도 역사적 가치를 품고 있는 고찰이다. 


당시 한양도성을 향하던 왜군은 청도로 들어와 승병 훈련의 본거지인 남지장사로 쳐들어와 사찰은 불바다가 되고 남은 전각이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어 폐사되고 말았다.


이후 1653년(효종 4년) 인혜가 중건하였고, 1767년(영조 43년) 모계화상이 중창했는데, 모계화상이 중창한 뒤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해 절 이름을 ‘남지장사’로 바꿨다고 하는데, 그 전의 절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대웅전과 극락보전, 설현당, 삼성각, 요사 등이 있으며, 설 앞에는 모계화상과 운계, 경운의 송덕비가 서 있고, 부속 암자로 청련암과 백련암이 있다. 청련암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지장사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설현당·삼성각·광명루·요사 등이 있다. 이 중 청련암은 대웅전 동쪽에 있는 암자로 유정이 수행하던 곳이다. 1990년에 보수한 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다. 백련암은 청련암과 반대쪽에 있으며 비구니 수행처로 알려져 있다.(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기도하는 지장도량, 남지장사


“남지장사는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도량입니다. 대웅전에 모신 지장보살은 1658년에 승호스님이 조성했다는 기록인 연기문이 남아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의 많은 사찰들이 불에 타고 그만큼 많은 불상들도 훼손이 되고 말았는데, 왜란이 끝난 후 사찰들을 중창할 때 많은 불상들도 새로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불상을 조성하신 분으로 승호스님이 계신데, 그 분이 조성하신 불상들이 현재까지도 경상도 지역 사찰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까지 덕사에 있는 불상이 가장 빠르다고 했는데, 남지장사에 모시고 있는 지장보살이 그것보다 십여년 먼저 조성된 것이 기록으로 확인이 된 거죠. 아마 올해 10월쯤 문화재 지정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혜천스님은 “남지장사가 지장기도 도량으로서 사람들이 늘 기도하는 도량으로 알아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며 “누구나 언제든 오셔서 같이 기도하면 좋겠다”고 했다. 


남지장사에서는 매월 초하루와 지장재일, 보름과 관음재일에 법회를 열고 있는데, 그 중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예불이 끝나고 신도들과 함께 세 시간씩 지장연명기도를 하고 있다.

“광명진언, 츰부다라니를 108독 이상 하는데, 진언이나 다라니는 그 내용을 하나하나 따지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정말 신심과 원력을 가지고 지극성젓으로 기도하면 감응 받지 못 할 게 없어요. 많은 진언과 다라니가 있는데 그 중에서 뭘 할지 모르겠으면 제일 가깝게 와 닿는 것부터 하면 됩니다. 내가 바라는 소망과 바람이 있으면 거기에 몰입해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나의 정신과 하나의 일치가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이게 좋다, 이게 나쁘다 분별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하나도 이루지 못하게 돼요.” 

 

liehan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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