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이야기] 문학과 예술의 바다를 품다, 통영

여행탐방 / 이재윤 / 2019-02-11 16: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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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이상기념관 전경

 

[일요주간 = 이재윤] 바다에 접했지만 거칠기보다 깊은 ‘혼’이 느껴지는 도시. 어린 시절 수학여행의 기억이 아스라이 남은 곳, 친구들과 해저터널을 걸으며 마냥 신기했고, 여객선을 타고 남해대교를 지날 때는 멀미도 잊은 채 그 규모에 놀랐다.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이순신 장군이요!”라고 했던 그 시절,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제승당 앞에서는 ‘나도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장군이 되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은 낡은 사진처럼 바랬지만, 그나마 기억 속에 남은 몇 안 되는 잔상을 안고 통영에 갔다.

 

▲ 윤이상기념관 내부


① 상처받은 용, 윤이상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김상옥으로 대표되는 통영의 문학적 전통과 함께 통영을 위대한 예술혼의 도시로 만든 이를 꼽으라면 단연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꼽겠다. 통영에선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해 그의 친구 또는 제자들이 그의 곡을 연주한다. 도천동에 있는 선생의 생가 앞 도로는 ‘윤이상 거리’가 되었고, 입구에는 그를 추모하는 흉상이 서 있다.


▲ 윤이상기념관 내부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나라, 혹은 그 지역의 유명 예술인들의 생가나 살던 곳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 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과 더불어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통영에 와서 윤이상 선생을 기리는 기념공원과 기념관, 그리고 기념관 뒤편에 있는 베를린하우스를 보며 그런 부러움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도심 속에 자리한 기념공원은 일상 속에서 쉽게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 거장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죽어서야 그리운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던 그의 한과 정서가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었는지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윤이상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 전시실은 그러한 윤이상 선생의 음악과 삶을 더욱 가깝게 보고 느낄 수 있다. 그의 음악을 듣고, 그의 손때가 묻은 첼로, 바이올린, 오래된 사진기 등 유품들을 보며 그의 삶과 음악을 공유한다.  


 

기념관 뒤쪽에 있는 베를린하우스는 윤이상 선생이 독일에 머물 때 탔던 자동차가 그대로 있고, 평소 그가 생활하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선생이 쓰던 책상, 피아노, 책들, 그리고 여기저기 얼룩이 진 거실의 카페트며 소파들까지, 마치 금방이라도 선생이 문을 열고 들어와 맞아줄 것만 같다. 


 

윤이상 선생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서양 현대음악에 접목시킨 작품으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선생이 우리나라 30여 개의 교가를 작곡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교가들은 지금도 불리고 있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간첩으로 몰려 죽기 전에 고향 땅 한 번 밟아보지 못 했지만, 그 시절 그는 비록 잊혀졌지만, 그의 노래는 고향땅에서 후배들의 입을 통해 불리어져 오고 있다.  


 

2018년 3월 25일 13시 5분, 김해공항을 통해 귀향한 선생의 유해는 생전 그의 바람대로 통영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파도소리가 들리는 통영국제음악당 마당, 너럭바위 아래 안치됐다. 사후 23년 만의 귀향이었다. 연꽃을 이르는 ‘처염상정(處染常淨)’ 네 글자가 흘려 새겨진 바위는 “할 일을 모두 끝내고 통영 앞바다에서 물고기나 낚겠다”던 그의 유언처럼 통영 바다로 애절한 마음을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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